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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u™'s Thinks

느리게 걷기, 천천히 생각하기, 그리고 한 발 뒤에서 바라 보기… by haruroh


'동이'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10.09.29 아들 살리려고 아들 죽이려는 잔인한 아버지! 숙종(2)
  2. 2010.07.27 동이를 통해 현재를 논하다!

아들 살리려고 아들 죽이려는 잔인한 아버지! 숙종

어제 또, 동이를 강제 시청했습니다. 드디어 조선조 가장 드라마틱한 삶을 산 여인 장옥정이 과거와 다른 드라마와 달리 죽음을 당했고, 그 후 이야기가 이어졌습니다. 장희빈의 사망을 정치적으로 해석하면 바로 남인의 몰락을 말하는 것 입니다. 물론 장옥정이 왕비에서 다시 희빈으로 강등된 사건인 갑술환국으로 남인은 병풍생활을 시작지요. 

숙종, 현종을 이어 14살 어린 나이로 왕위에 올라, 치열한 당파싸움 속에서 이를 이용하여 조선 왕들중 비교적 강력한 왕권을 누린 왕입니다. 이를 환국 정치라 합니다. 상황에 따라 각각 남인과 서인으로 개각을 하고 정권을 상실한 당은 상당수 사사하여 기존의 정책 대결의 당쟁은 피 바람이 부는 권력 투쟁으로 만든 장본이기도 합니다. 거기에 아들까지 당파에 소속하게 하고, 결국은 자신마저 당파의 일원이 되게 만드는 왕입니다.
사이 좋은 형제

사이 좋은 형제(출처 동이 공식 블로그)


숙종과 숙빈, 연잉군을 왕좌로! 모의하다!
왕조 국가에서 왕자들이 왕이 되는 것은 현제의 왕이 선위를 하거나[각주:1] 왕이 죽어서 왕 자리가 공백일 때 가능한 일 입니다. 그러나 숙종은 숙빈에게 말합니다. 연잉군을 보호하려면 영인군이 왕이 되어야 한다고...

이것은 말 그대로 숙종이 현 세자(훗날 경종)를 죽이겠다고 선언한 것과 같습니다. 다음 왕위를 이을 세자가 존재하는 상황에 다른 왕자를 왕좌에 올린 다는 것은 바로 역모입니다. 그러나 그 역모의 주체자가 현재의 왕인 숙종이니, 얼마나 황당한 일입니까?

버려진 왕자, 폐세자들의 삶
실제로 조선 역사상 2번의 폐세자가 있었습니다. 
그 중 한명은 태종의 첫번째 아들 양녕대군 입니다. 그리고 양녕대군을 대신해서 왕좌에 오른 이는 바로 세종대왕이지요. 그리고 양녕대군은 천수를 누리고 세종의 후손들에게 복수[각주:2]까지 하며 잘 살고 갔습니다. 
원래 정치 역학적으로 천수를 누릴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태종이 세종에게 양위를 하기전 피의 숙청을하고 그리고 생전에 스스로 양위를 하여 세종에게 물려 주고 상왕자리에 올라서도 강력한 군권을 장악했기 때문에 양녕대군을 둘러 싸고 역모사건이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태종 사망후 여러차례 양녕 대군을 사사하자는 신하들의 주청이 있었지만 역시 성군 세종대왕은 끝까지 자신의 형을 지켜냈습니다.

그리고 또 한명의 불운한 세자는 바로 아버지에게 죽임을 당한 사도세자입니다. 영조 스스로 노론의 당원이기에 소론의 사상을 가진 아들을 뒤주에 가두어 잔혹히 죽여버렸습니다. 

한번 세자 자리에 올랐다가 강제로 폐세자가 되면 죽는 길 뿐이 없습니다. 만일 죽이지 않고 살려 두는 것은 훗날 왕이 되는 왕자에게 엄청난 정치적 부담감을 물려 주는 것 입니다. 더구나 정책 싸움에서 피 바람이 부는 당쟁속에서 그들이 원하던 원치 않던 상관없이 당파에 소속된 왕자들이기에 죽여야 합니다. 

양녕 대군은 일은 정말 특수한 경우 입니다. 조선 왕들 중 연산군과 더블어 가장 강력한 왕권을 소유한 왕이 바로 태종입니다. 그는 조선 건국에도 참여한 왕자이기도 하며, 자신들의 사병을 동원해서 왕 앞에서 배다른 형제들을 죽이고 거의 스스로 왕좌에 오른 이입니다. 그리고 조선 건국 후 수 많은 공신들을 모조리 숙청해서 자신이 선택한 다음 왕인 세종을 위해 정치적 부담과 원망을 스스로 떠 않고 갔습니다. 덕분에 세종은 뛰어난 문치를 보이며 조선의 르네상스를 보여주었습니다. 

그러나 숙종 때의 경우는 다름니다. 인조 반정 이후 효종, 현종, 숙종에 이르는 안정적 왕위 물림을 다시 혼란 속으로 몰고가는 발언을 했습니다. 

정적

더 이상 사이 좋은 형제로 머물 수 없는 형제, 아니 이제는 서로 둘 중 하나가 죽어야 편이 쉴 수 있는 정적



모두를 죽일 수 있어야, 권력을 차지할 수 있을까?
숙종 자신은 어린 아들을 살리려 한 방도가 다른 큰 아들을 죽이겠다는 결정한 것입니다. 더구나 그들은 태어나기 전 부터 당적이 결정되고 서로 정적이 되는 아들들 입니다. 이는 숙종 스스로 만든 원인이기도 합니다. 하나의 정치 권력이 지지하는 왕자들은 다른 왕자가 왕위에 올라가게 되면 각종 헌담과 모략을 발생시킴니다. 그리고 둘 중 한명이 죽어야 끝이 나겠지요!

실제로 경종은 동생인 연인군(훗날 영조)를 죽이도록 강요 받았고[각주:3], 영조(연잉군)는 경종을 독살했다는 의심을 끝까지 받게되어 영조 초반 정치적 부담을 크게 가져갑니다.[각주:4] 실제로는 사이 좋은 형제인 경종과 영조, 그러나 그들이 서로를 죽여야만 상황을 만든 것이 바로 아버지인 숙종입니다. 더구나 어제(28일 방송분) 방송 된 것 처럼 노골적으로 연잉군을 왕으로 만들겠다는 발언을 한이가 왕인 숙종이라면 훗날 이어진 역사적 사실과 상관 없이 이 둘 아들 중 한명이 살아 남을 때까지 형제들끼리 싸우거나, 아비인 왕 스스로가 나머지 한 아들을 죽여야 했을 것 입니다.

왕조 국가에서 왕좌를 두고 다투는 정치 투쟁은 다른 상대를 죽여야만 끝날 수 있습니다. 더구나 이들은 친인척간에 일어나는 아주 비정한 일입니다. 왕조가 교체되는 상황의 정치 투쟁은 기존 왕을 오래 도록 살려 두고 천수를 누리게 한 예는 있지만(서로 남임에도 불구하고) 같은 형제들과 친인척간의 왕위 다툼은 서로를 죽여야 끝나게 됩니다. 태종 이방원도 자신의 형제들을 죽이고 왕이 되었고, 조카와 동복 형제, 배다른 형제를 죽이고 왕이된 세조, 중종 반정 후에 사사된 연산군등 이들은 자신들이 원하던 원치 않던 서로의 핏줄을 죽였야 했습니다.

역시 정치 권력 투쟁은 잔혹해야 승자가 될 수 있는 투쟁입니다.
 



  1. 그 선위가 태종, 세조의 예 처럼 자신의 아들을 위해 스스로 물러난 것이든 태조, 정종, 단종 처럼 쿠테타에 의한 강력한 왕가 실력자들에게 강요된 것이냐의 차이는 이겠지만... [본문으로]
  2. 계유정난을 통해서 왕위에 오른 세조, 그러나 그를 부추키는 인물 중 하나는 왕족인 양녕 대군입니다. 더욱이 세조가 조카인 단종을 죽이는 과정이나 세조의 친형제들 죽이는 과정에서도 일조를 합니다. 자신은 왕이 되지 못했지만, 동생인 세종보다 오래 살고, 동생의 자손들이 서로를 죽이도록 부추키다가 천수를 누리고 죽었습니다. [본문으로]
  3. 한 밤중, 그것도 정적들을 제외하고 노론 대신들이 찾아가서 경종을 윽박질러 연잉군을 왕세제로 만드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는 훗 날 역모의 죄로 물려 한 밤중에 경종을 찾아간 대신들은 사사당한다. 그리고 역적의 수괴에 바로 연잉군이 올라가고 소론은 연인군을 죽이자고 하지만, 경종은 끝내 거부하였고, 단명하고 만다. [본문으로]
  4. 경종 독살설이 있으나, 선왕인 경종의 후사가 없었고, 왕세제인 연잉군이 왕조에 올랐기 때문에 절차상에는 문제 없이 왕좌에 오른 영조는 즉위하자 마자 김일경을 국문해야 했고, 이인좌의 난들 경험해야 했다.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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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2010.10.04 23:08 address edit & delete reply

    비밀댓글입니다

    • haRu™ haruroh 2010.10.06 08:13 신고 address edit & delete

      ㅎㅎ 다시 가서 역사책 보세요.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
      태조는 함부로 주는 시호가 아님니다. 고조 역시...

      세종의 아버기자 태종이라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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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이를 통해 현재를 논하다!

동이

직접 시청한 것은 아니다. 가족들이 마루에서 동이를 시청하고 있어서 들리는 소리에 의하면 26일 방영분은 경종母인 장희빈이 왕비에서 다시 후궁으로 몰락하는 과정이 방영되었다.[각주:1] 장희빈이라는 지겨울지 모르는 소재를 영조母인 동이의 시선으로 그린 드라마이다. 아마 한국사에서 장희빈과 같은 파란만장한 여인이 어디에 있을까! 일반 백성의 신분으로, 왕위를 이을 왕자를 낳아서 한 나라의 왕비가 되었지만, 다시 몰락하여, 결국엔 왕세자의 어머니가 사사당한다. 그녀는 가장 여인들이 수동적이였던 시대에서 신분의 벽을 넘어 왕비까지 되었고, 그녀의 아들은 다음 왕이 됬었다. 그러나 그녀의 아들이 왕이 되기 전, 그녀는 사사를 당하고, 몰락에 결정적 역활을 한 숙빈 최씨, 그러나 그녀의 행동 결과에 그녀가 낳은 아들 아들(영조)의 정치적 한계[각주:2]인 장희빈의 아들 경종 될 줄은 몰랐을 것이다!

MBC의 월화 드라마 동이!


조선은 왕의 나라? 신하의 나라?

조선은 왕권이 매우 약한 나라였다. 조선은 왕의 나라가 아닌 사대부의 나라였다. 조선의 출발은 태조 이성계와 신진사대부인 정도전등의 결탁에 의한 역성혁명으로 태어난 나라였다. 그래서 조선의 왕과 신하의 권력투쟁이 심했던 나라였고, 왕은 자신을 조선의 국왕으로, 지배계급인 사대부들은 왕을 제 1 사대부로 바라보았다. 이러한 왕과 신하들의 권력 투쟁속에 비교적 강한 왕권을 행사 한 왕들은 태종, 연산군, 숙종 정도 였다![각주:3]

태종은 스스로 조선건국에 큰 공을 세운 왕자로서 독자적인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다. 2번의 왕자의 난을 통하여 스스로 정권을 잡은 왕이다. 그는자신의 후계자 자리를 영토를 확장시킬 자신을 닮은 후계자(양녕대군)와 나라를 안정시킬 학자적인 후계자(세종)를 저울질 하다가 결국 안정을 선택한다. 또 후계자에게 강한 신하들을 남겨 부담을 주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각종 악역을 도맡아 했다. 심시어 세자빈을 3번이나 교체했고, 결국 세종의 장인과 처남들까지 죽이는 선택을 한다. 상왕으로 물너나 세종에게 양위를 하고도, 병권을 놓지 않고 있어서 세종에게 정치적 부담을 주었다. 허나 결과적으로 세종대왕이 보다 많은 일을 할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 주었다[각주:4]. 즉 태종의 강력한 왕권은 병권 장악을 통해 나왔고, 그 결과물은 세종대왕 치세의 밑거름이 되었다![각주:5]

연산군은 비록 신하들에 의해서 물러난 조선의 첫번째 왕이지만[각주:6] 조선의 왕들 중 가장 강력한 왕권을 행사한 왕이였다. 그의 치세가 억울한 어머니의 죽음으로 인한 폭력 정치가 되었지만, 그는 어머니의 죽음이유를 알기 전까지는 나름 안정된 정치 기반 위에서 강력한 왕권을 행사 했다! 그러나 그는 각종 사화를 바탕으로 신하들을 도륙하다가, 신하들에 의한 반정으로 왕위에서 쫓겨나게 되었다. 

동이에서 로맨스가이 숙종, 분열된 신하들을 농락하며 강한 왕권을 즐겼다!

드라마 동이속의 왕인 숙종 역시 강력한 왕권을 행사했다. 15세의 어린 나이에 왕위에 올라, 사대부의 나라인 조선에서 강한 왕권을 가지려면, 분열한 신하들의 싸움을 이용해서 강력한 왕권을 유지한 왕이다. 즉 환국정치[각주:7]를 한 숙종은 선조때부터 이어온 붕당정치[각주:8]를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안되는 상황으로 몰고 갔고, 그 결과 자신의 왕비들과 자식들에게 당적을 부여했고, 이 것이 조선 후기 중흥기에 결정적 악영향을 미치게 된다. 

왕의 여인과 왕자들 마저 하나의 당에 소속된 당원
서인가문의 인현왕후, 남인가와 친한 장희빈, 서인들에게 기획된 숙빈 최씨(동이)[각주:9]등 숙종의 여인들은 뚜렸한 당색을 가진 여인들이였다. 
숙종대 만들어진 왕비와 자신의 자녀 조차 당파의 일원으로 만들 정도록 당쟁이 격화된 결과[각주:10], 상대 당파를 함께 정치를 해야 할 파트너가 아닌 죽여야 할 정적[각주:11]으로 만들었다.
심지어 숙종 후대의 왕조차 당파의 일원이 되어 소론인 경종, 노론인 영조, 소론을 지지해 아버지에게 죽음을 당한 장헌세자[각주:12]라는 결과물이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소론은 노론왕인 영조를 인정하지 않았고, 노론은 소론왕인 경종을 왕으로 취급조차 안했다.

조선 후기의 중흥기? 마지막 불꽃?

숙종, 영조, 정조 치세를 조선 후기의 중흥기라 불린다. 그러나 필자의 관점은 조선의 수명은 인조반정과 병자호란으로 인해서 다하였다고 본다. 이는 죽기전 마지막 불꽃이 숙종, 영조, 정조의 치세라 할 수 있다.[각주:13] 인조가 만든 정치적 부담[각주:14]과 국제 정세 판단 미숙을 보였다. 그 결과 세계의 역사는 발전했지만, 조선은 정체했고, 한민족 역사상 최초로 식민지가 되는 상황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 일제강점기 동안 부역자들이 모인 정치 집단이 지금까지 대한민국의 제 1 정당으로 활보하고 있는 상황까지 연결된다!

그리고 지금

참여정부때, 언론에서 거론된 문제 중 하나가 바로 "국론 분열"이다. 그러나 이는 당연한 결과이다. 사회가 발전할 수록 복잡해지고, 민주화가 되어 갈 수록 국민 개개인의 목소리는 커지게 되어간다. 이는 "국론 분열"로 표현되고, 각자의 이익과 생각에 따라서 갈등은 심해진다. 인터넷이라는 새로운 문물은 보다 다양한 목소리를 세상나오게 하였고, 이를 통해국론 분열이 되어지는 모습을 보여지게 된다. 그러나 조선시대의 역시 지배계급인 사대부들의 분당을 보면 처음에는 동/서인으로 동인은 남/북인으로, 서인은 노론, 소론으로 노론은 시파와 벽파로 분화하였다. 이는 사회가 발전할 수록 개개인의 이익과 생각이 다양하게 표출되고 이는 분열로 비추어지는 것이다. 

과연 국론 분열이 나쁜 것일까?

그러나 필자는 참여정부의 가장 큰 공으로 보는 것이 국론 분열이다. 나라의 주권을 가진 국민들이 과거에는 제왕적인 정치지도자들에 의해서 의견이 통일 되었다. 이것은 군사정권의 가치였고, 독재자들의 통치 수단이였다. 과연 모든이 생각이 통일 되어야 할 것인가? 참여정부는 이러한 경직된 사회를 뚫고 각자의 목소리에 귀기우린 정부였다. 여기서 한가지 잘못은 있다. 바로 다양한 목소리가 국가가 시행해야할 정책으로 이어지게 까지 협상과 타협[각주:15]을 통해 많은 생각들을 선택하고, 통합하는 과정이 부재했기 때문에 문제가 된 것이다! 이는 우리 모두가 반성해야 하는 문제이기도 하다. 

협상과 타협이 현대 정치의 기본이다!

우리나라의 정당들의 우선 행동은 정권창출이다. 현대 정치의 목표가 정권 창출이 되어서는 안된다. 현대 정치는 다양한 목소리를 취합하여 국가 정책으로 시행 될 수 있는 합의점을 찾는 것이다. 이러한 합의점은 정치투쟁이 아닌 협상과 타협을 통해서 이루어저야 한다. 상대 정파을 죽여야만 자파가 살 수 있던 과거를 우리의 미래로 만들어서는 안된다.[각주:16] 우선은 상대 정당을 정적이 아닌 정치 파트너쉽이 필요하다. 정당들의 목표는 자신들이 대변하는 국민들의 목소리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주권을 소유한 국민들 역시 상대 정파를 죽이는 정치 집단에게 정치 권력을 부여하는 오류를 다시 한번 더 저질러서는 안될 것이다! 철저하게 자신의 이익을 위해서, 또 자신들의 후손들을 위해서 검증하고, 선택해야 대한민국의 미래가 있을 것 이다! 


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 - 처음은 트윗을 날리려다, 140자를 넘기게 되어 여기에 살을 붙혀 나온 결과 물입니다.


  1. 평소 사극을 보지 않는다. 다모나 추노등 완벽한 창작사극은 보지만, 역사책을 보면 결과를 알 수 있는 사극을 시청하는 것은 이젠 고통이다! [본문으로]
  2. 영조는 성군의 자질이 충분했다. 또 백성을 매우 사랑한 왕이였다. 그러나 그는 즉위전 역모의 수괴로 몰려 죽을 번했다. 또 영조때의 반란은 경종 독살설에 의한 정치적 반란있였고, 결국 그는 10여년간 대리청정한 자신의 아들 마저 죽이게 되는 폐륜을 저질렀고, 그 결과 후대 왕인 손자인 정조에게 정치적 부담까지 유산으로 남겨 주었다. [본문으로]
  3. 조선은 정치적으로 매우 발전된 나라였다.왕의 1인 독재가 아닌, 신하들에게 권력을 나누어 주고, 이들이 행한 정치 행위에 대한 책임을 물어보는 현대 정치와 유사한 형태로 발전한 나라였다.그리고 일반 백성들의 사형 조차 국왕의 결제가 필요한 나라였다. [본문으로]
  4. 세종대왕의 수 많은 업적은 초기에는 상왕 태종이 후기에는 대리청정을 한 왕세자(문종)의 정치적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를 발판으로 그는 정말 많은 일을 할 수 있었다! [본문으로]
  5. 조선 초기에는 강력한 훈구대신과 왕권의 충돌이 많았다. 비록 신진사대부인 정도전에 의하여 조선의 기틀이 완성이 되었으나 건국과 왕족들의 후계자 쟁탈을 통해 탄생한 공신들에 의해 점점 왕권은 약화 되었다. [본문으로]
  6. 태조와 정종 아들에고, 단종이 숙부에게 왕권을 빼았기지만, 이는 왕족내부의 권력 투쟁이였다. [본문으로]
  7. 정당의 연립 정부가 아닌 왕에 의해 선택된 1당 독재 정치 [본문으로]
  8. 사상이나 정치적 이익을 달리한 정당 정치 [본문으로]
  9. 무수리 출신 그녀는, 입궁하기 전, 서인가 소속 [본문으로]
  10. 환국으로 인한 내각교체를 통한 붕당들의 정책대결이라는 시선이 있다! [본문으로]
  11. 내각 교체를 통한 붕당의 정책 대결이 아닌 상대 정파를 죽이고, 자신의 정파인물은 사후 복원하는 대결을 한 것으로도 볼 수 있다! [본문으로]
  12. 사도세자, 정조의 아버지 [본문으로]
  13. 아! 정조는 정말 아깝다! 그의 할아버지인 영조가 남긴 정치적 유산이 너무나 부담스러웠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아버지를 죽인 정파까지 끌어 안으려 했다! [본문으로]
  14. 반정을 통한 정통성 결여에 자신의 장자마저 죽여 효종의 정통성 마저 정치적 파트너였던 서인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상황까지 만들었다. [본문으로]
  15. 생각이 틀린 것이 아닌 생각이 다른 것이다! 이것을 먼저 인정해야 한다! [본문으로]
  16. 현 정권이 비록 상대 세력들을 죽이고있지만! [본문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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