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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Ru™'s Thinks

느리게 걷기, 천천히 생각하기, 그리고 한 발 뒤에서 바라 보기… by haruroh


'성화봉송취소'에 해당되는 글 2건

  1. 2008.04.19 티베트 독립운동과 2008년 북경 올림픽에 대한 2가지 다른 생각(2)
  2. 2008.04.07 티베트 독립운동과 2008년 북경 올림픽에 대한 2가지 다른 생각(1)...

티베트 독립운동과 2008년 북경 올림픽에 대한 2가지 다른 생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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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티베트 독립 시위에 강력 대응하는 모습


앞 선 글 "티베트 독립운동과 2008년 북경 올림픽에 대한 2가지 다른 생각"이 티베트에 대한 사전 조사 부분이 생각보다 길어져서, 2부작이 되었습니다.

그럼 이제 부터 제 생각을 말해 보겠습니다.

#생각 하나.
자주 가는 인터넷 모동호회사이트에서 이 주제에 대한 글타레를 보다가 올림픽기간의 테러를 걱정하는 글을 보았습니다. 거기서 부터 시작한 생각입니다.

올림픽 기간에 테러라...
안중근 의사도 외국인들 눈에는 평범한 테러리스트 중 하나이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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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러리즘에 찬성하는 것은 아니지만(전 비폭력 저항 주의자라...), 테러리스트 안중근을 우리가 "안중근 의사"라 불리는 것을 당연하다 생각하는 것은 강자에 대한 최후의 저항 수단으로 가장 쉽고 파급효과가 큰 일이기에 쉽기때문입니다. 다만 테러 대상에 대한 선택이 문제겠지요. 적어도 안중근의사의 "테러"는 피박받는 민족에게 직접적인 가해자를 대상으로 한 테러와 불특정 다수를 노리는 테러는 차이가 있습니다. 이는 전쟁에서 상대국 군인을 죽이는 것과 상대국 민간인을 죽이는 것의 차이입니다. 비록 우리가 힘이 없서서 주권을 잃어버렸지만, 당시 민초들은 일본과 전쟁을 하고 있었던 것 입니다.

그러나 그 티벳 민족을 탄합하는 속에 일명 "평화의 축제"라 주장하는 "올림픽"이 열린다는 사실이 좀 더 불편한 것이 솔직한 심정입니다. 우리나라 역시 식민지 시절이 있었기에 그들 민족의 독립을 꿈꾸는 마음이 이해가 갑니다. 그리고 그들의 바람이 간절 하다는 것도 이해가 됩니다. 과거 우리의 조상들이 노력이 있었기에 독립이 있었겠지요! 또 힘없고 약한 민족이지만, 그들을 위해, 지원해준 사람들이 있었기에 우리의 독립이 가능했던 것 입니다.(덕분에 냉전의 최전선으로 분류되고, 역사청산등 하지 못한 일들이 많이 있지만)

그러나 그들 민족이 진정바라고, 그들 힘으로 가능하다면 스스로 독립을 이루기를 기원 합니다.



#생각 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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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모론

이제 음모론 숭배 주의자로서의 음모론 제기...
저는 얼마전 부터 중국이라는 나라가 차기 미국을 제치고 패권을 차지할 나라 중 가장 강력한 후보라 생각했습니다. 그 원인이 그들의 넘치는 인적 자원입니다. 중국의 가장 큰 단점인 석유 문제만 해결이 된다면, 그들은 오히려 다른 나라들 왕따 시키고 자신들 끼리 먹고 살 수 있는 땅과 인구수를 가지고 있지요. 석유를 대치할 에너지를 개발 하거나 유전이 중국에 발견 되거나, 힘으로 유전을 차지하거나 등등...
이미 세상은 중국산이 점령을 했습니다. 그들의 엄청난 머릿수로인한 넘처나는 저렴한 노동력을 가지고 세계 시장을 점령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이제 점점 보다 좋은 퀄리티의 제품으로 나오겠지요.(아직까지는 중국산이라고 무시해도 될 만큼의 품질이지만.... 과거 이는 일본도, 우리도 격었던 일정의 과정입니다. )

자 이제 진짜 음모론...
2차 세계 대전의 패전국 일본... 한국 전쟁을 발판으로 경제가 성장한 후 64년 동경 올림픽이 열린 후 일본 경제가 세계를 제패함... (비록 90년대 후반 부동산 버블 터짐으로 오랜 침체기에 갔지만...)

동서 냉전의 시발점이라 볼 수 있는 대한민국, 동족산잔이라 불리는 6.25 전쟁으로 인한 피폐함 속이 노력으로 경제 발전 후 일본이 올림픽을 개최 한지 24년만에 88 서울 올림픽 개최로 아시아의 신흥 경제 강국으로 성장, 98년 IMF로 잠시 주춤 했으나, 그도 빠르게 극복하고 세계 경제 11대국으로 성장...

88년 서울 올림픽이 열린지 20년 후, 그리고 68년 동경 올림픽이 열린지 40년 후 2008년...
극동 아시아 4국 중 가장 큰(땅과 인구수가)나라인 중국에서 올림픽이 열림...
모테동의 처첨한 대장정으로 출발한 중화 인민 공화국이 그 동안의 탈냉전 열풍 속에 시장을 자국 주도로 개방하고 발전 시킴... 결국 올림픽 개최...
그리고 세계 경제에 그들이 미칠 영향은?

그 이 후가 무서운 모처의 세력이(프리메이슨이나 유태인 결사단체등... 자신들이 세계를 움직인다고 생각하는 비밀결사 단체들..) 앞선 2개국의 작은 나라(일본과 대한민국, 인구와 땅덩어리 기준)가 미치는 영향력에 놀라, 이 엄청난 크기의 나라가 그들과 같은 위력을 발휘 한다면 그들의 기득권(세계 패권)을 위협 할 수 있다고 판단.
또 다시 열리는 20년만에 극동아시아에서 열리는 올림픽을 저지하고자 청나라 이후 점령된 민족을 때늦은 독립운동을 조장함(식민지국들이 대거 동립한 2차 세계 대전 종료 직후인 1945년도 아닌 현제에...)
그들의 올림픽을 성공리에 개최하는 것을 방해 작전 중의 일화로 선택된 민족이 티벳 민족이 아닐지...(그리고 만약에 분리 독립에 성공한다면 중국에 가장 큰 타격을 줄 자원을 가진 지역에 사는 민족들임)

아 음모론이 너무 발전 했나요? 이는 순전히 제 머리속 상상임니다. 조사 하나 안하고.. 그냥 알고 있는 지식들을 동원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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티베트 독립운동과 2008년 북경 올림픽에 대한 2가지 다른 생각(1)...

20년만에 아시아에서 올림픽이 열리는 해입니다. 1964년 동경 올림픽을 시작으로 아시아에 거의 20년 주기로 올림픽이 개최되고 있습니다.
20년 전에는 서울에서 열린 올림픽이 아직도 기억 속에 남아 있군요.
아시아에서 최초로 올림픽이 열릴번 한적은 1940년 일본에서 열릴 예정이였는데, 1940년과 1944년 올림픽은 세계 2차대전 때문에 개최가 취소되었죠.(40년 동경, 44년 런던 예정)

특이 한 점은 이 올림픽을 개최한 아시아 3국은 아시아 경제를 주도하는 나라라 볼 수 있습니다.(아직 북경올림픽이 열리지 안았지만...)

오늘 최신 소식으로는 북경 올림픽의 성화 봉송 중  프랑스에서 3차례나 꺼지는 사건이 발생하여 성화 봉송 취소했습니다.(관련기사 : 佛, 올림픽 성화 봉송 취소)


아주 치열하게 티베트 유혈 진압에 대한 항의시위가 잇달아 벌어지고 있습니다.(타국민들의 자유를 위해 저런 격열한 시위를 할 수 있는 프랑스 시민들이 대단하게 여겨집니다.)

간단히 티베트에 대하여 알아 보고 넘어 가겠습니다. 저도 티베트에 라마승이 있다는 것와 지구상의 육지에서 가장 높은 곳이어서 '세계의 지붕'이라 불리는 것 이외에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다만 이면 티베트 유혈 진압에 대한 관련 부분을 위해 티베트에 역사에 관한 부분만 언급하겠습니다.
보다 자세한 사항은 무적의 위키백과를 참조 하시기 바람니다.(저도 위키백과 참조입니다.)

자세한 부분은 생략하고 중국과 바로 관계가 있는 부분으로 넘어가면
9세기 중반 중국과 티베트 사이에 평화협정을 맺었으며, 두 나라의 국경에 대한 설명과 함께 양국 언으로 기록된 이 조약은 라싸의 조캉 사원 앞의 돌기둥에 새겨져 있다.(이 시기의 티베트는 토번(吐蕃)이라 불리고, 티베트 문자를 사용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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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20년경의 세계. 티베트는 중국(노랑색) 남쪽의 짙은 녹색으로 표시되어 있다.



티베트는 13 ~ 14세기에는 원나라의 지배를 받기도 하였으며, 1750년에는 청나라 건륭제의 팽창 정책으로 보호령이 되었다.

1912년 청나라가 멸망한 후, 티베트의 달라이 라마 정권은 완전한 독립을 모색하여, 1913년몽골과 상호승인조약을 체결하여, 두 나라가 협동하여 한인의 공화정권인 중화민국에 대항하기로 하였다. (중략) 티베트는, 신해혁명의 소식이 알려진 1913년, 라사를 점거하였던 청나라 군대가 격렬한 시가전 끝에 물러났으나, 그 이후에도 중국국민당 등의 중화민국의 역대정권과 군사적인 긴장상태가 유지되었으며, 티베트 달라이 라마 정부의 실효적 지배영역내에서는 어떠한 중국의 기관도 설치가 승인되지 않았다.

(중략)

청나라의 멸망 이후, 중화민국의 역대정권은 독립국으로서 존재한 티베트를 중국의 일부라고 주장하였으나, 북경정권의 시대에는 군벌의 혼전, 남경국민정부 시대에는 대일전쟁으로 독립을 주장하는 티베트에 대하여 압력은 행사하였으나 본격적인 군사적 침략은 하지 못했다. 하지만, 1949년 중국공산당이 내전의 승리로 종교를 인정하지 않는 사회주의 국가인 중화인민공화국을 세우고, 티베트의 전 지역을 목표로 1950년 중국 인민해방군이 군사행동을 시작하여 티베트를 점령하였다. 1951년 이후, 거의 대부분의 지역이 중화인민공화국에 의해서 점령, 통치되고 있으며 많은 티베트인들이 정치적인 이유 또는 탄압을 피해 인도로 망명했다. 중국공산당정부는 티베트 국민에 대한 잔인한 탄압과 학살로써 티베트를 억압지배하였고, 1960년대에는 중화인민공화국 전역을 강타한 문화대혁명의 여파로 3,700개나 되던 사찰은 13개만 남고 모조리 파괴되었다.

이후 시짱자치구(서장자치구, 西藏自治區)가 설립되어 티베트인들에 대한 자치가 허용되었다.

간단하게 위키백과에서 중국이 티베트를 침략한 부분만 발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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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각자의 영역 주강 구역


                  티베트 망명 정부가 주장하는 티베트의 영역
                  중국 정부가 정한 티베트 영역   
                 티베트 자치구  
                  인도가 악사이 친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지역
                  중국이 티베트 자치구의 일부라고 주장하는 지역
                 그 외의 티베트 문화 영향권 


쉽게 생각하면 티베트는 현재, 중국의 식민지라 할 수 있습니다.(이는 티베트인 기준 생각입니다.)
그리고, 2008년 3웠 10일 1959년 티베트 독립운동 49주년을 기념하는 의미로 티베트 승려*수도승) 600여명의 중국 정부에 대한 항의 시위로 시작되어 2008년 3월 14일 티베트 독립운동 시위대가 중국 경찰과 출돌하면서 유혈사태로 번지게 되었고, 중국 정부의 무력진압으로 사태가 격화되고있습니다. 이에 따른 세계 각지에서 티베트 시위 유혈 사태에 대한 반중시위가 열리고 있고, 북경 올림픽 성화 봉송과 함께 반중시위가 확대 되고 있습니다.


(2부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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